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선총독부 청사 (문단 편집) ===== 각종 어록 ===== [[김종필]] 前 국무총리는 [[중앙일보]]에 연재된 회고록에서 [[http://mnews.joins.com/article/18852622|이를 회상하며]] YS의 역사 인식에 대하여 비판의 뜻을 내비쳤다. >[[김영삼|YS]]는 ‘역사의 후퇴’를 말했지만 역사는 어떠한 경우에도 뒤로 가지 않고 앞으로 전개되는 법이다. 어제는 어제의 논리로 최선을 다했고 그것이 바탕이 되어 오늘이 이뤄진 것이다. 어제는 오늘의 어머니, 어제가 있기에 오늘이 있는 것이다. 역사의 평가는 역사가에게 맡겨둬야 한다. 정치인이 역사를 단죄(斷罪)하려 들면 역사를 오도(誤導)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대통령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국립중앙박물관]] 건물의 중앙홀은 1948년 출범한 제헌국회 의사당으로 쓰인 역사적 장소입니다. 그 '''중앙홀만은 부수지 말고 [[독립기념관]]으로 이전하시지요.''' 제헌 국회가 탄생한 장소는 대한민국 독립의 명맥을 잇는 역사물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국립중앙박물관 앞 국기 게양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가 해방됐을 때 가장 처음 [[태극기]]를 올린 게양대입니다. 또 [[한국전쟁|6·25 사변]]으로 [[부산]]까지 피란을 갔던 우리 군이 3달 만에 서울을 수복하고 태극기를 올린 바로 그곳이기도 합니다. 이 국기 게양대도 함께 독립기념관으로 옮겨 남겨 놓으시죠. '폐허론'을 제기한 [[유홍준]] 교수 또한 구 총독부 철거 사안에 침묵을 지켰다는 비판에 직면했었다. 유 교수가 침묵을 지킨 게 당시 철거론자였던 정양모 국립중앙박물관장과의 학연을 무시 못했더라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사실 [[유홍준]] 교수는 자신과 학연 등이 있는 학계 인사들의 과실에 유독 관대한 경우가 많아서 비판의 대상이 되곤 했다. [[국민교육헌장]] 제정을 주도했던 전 [[서울대학교]] 철학 교수 [[박종홍]], [[무령왕릉]] 날림 발굴로 욕을 얻어먹었던 역시 서울대학교 [[김원용]] 교수 등에 대해서는 유독 관대하게 평함을 그의 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유 교수는 [[월간 말]] 1997년 9월호에서 아래와 같이 항변했다. >이전 반대 운동에 왜 동참하지 않았느냐고 하는데 고고학계는 그걸 했지만 미술사학계는 동참 안 했어요. 난 미술사학계고, 또 박물관 건물의 이전은 새로 지어서 옮기는 게 낫죠. 그런데 당시 그것은 정직한 주장이 아니었어요. 그 주장은 총독부 건물을 허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진짜 헐 것 같으니까 궁여지책으로 내건 주장이었고요. (중략) 총독부 건물은 헐어야 해요.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그런데 헐고 있는데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해요. 그건 박물관 건물을 헌 게 아니예요. 총독부 건물을 헌 거지. > - [[월간 말]] 1997년 9월호 p22~29. <권두인터뷰: 유홍준(유홍준-안철홍 기자 대담)> 이에 소설가이자 재야사학자 성낙주[* 1955~2020년 11월 5일 [[뇌출혈]]로 사망. 이 사람은 [[석굴암]] 연구로 유명했고 석굴암 관련 분야에서도 손꼽히는 전문가였다. 사학자로서 일본의 유물 약탈 및 훼손을 조사하며 비난하고 자료도 남겼던 그도 총독부 청사를 역사적 자료로 봤던 것.]는 유 교수의 항변에 대해 "도대체 문화유산을 지키는 데 소속이 뭔 상관인가. 고고학계와 미술사학계를 편가름하는 것부터 가소롭거니와, 뭔 미술사학계가 자신의 과오를 지켜주는 방패라도 된다는 말인가"는 요지로 다음 달에 같은 잡지에서 아래와 같이 반박했다. [[https://blog.naver.com/chakrasung/222015327797|또, 같은 시기 <인물과 사상> 2권에서도 비슷한 의견을 냈다.]] >게다가, '정직한 주장'이 아니라니, 박물관 관계자며 대학 교수 등 5천여 명의 지식인들이 오직 구총독부 건물을 보존하기 위한 위장 논리로 문화재 보호를 들고 나왔단 말인가. 또한 총독부 건물을 헌 것이라면, 그 안에 있는 십수만 점의 유물은 어떻게 되어도 좋다는 논리인가. 지금 유홍준의 시계는 몇 시인가. 구시대의 유물인 권위주의 시계를 차고 이 혼돈에 찬 세기말의 시계를 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설사 미술사학계가 몽땅 침묵했다 치더라도, 언필칭(言必稱) 문화유산을 목숨처럼 사랑한다는 유홍준은 혼자라도 나섰어야 옳았다. 정작 싸워야 할 때 모르쇠로 있었으면 반성하고 자숙하는 것이 도리이거늘, 자신의 치부를 감추기에 급급해 그분들을 매도할 수 없는 일 아닌가. > - 월간 말 1997년 10월호 p244~247. <'문화권력' 유홍준의 권위주의(성낙주 글)>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